우리 엄마는 왜 임영웅에 열광하는가
올해 일흔인 우리 엄마는 도대체 왜 가수 임영웅에 열광하는 것일까?
임영웅의 멋진 무대를 크게 많이 보시라고 유튜브 프리미엄을 연결한 아이패드를 드렸더니, 금방 사용법을 익히시고선 임영웅 메들리 영상을 계속 틀어놓으신다.
다 커서도 신화를 덕질하던 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가 드디어 내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
우리 엄마는 외출을 참 좋아한다. 동네 화원에 가서 작은 다육식물이나 들꽃을 한두 개씩 사 온다. 사랑방인 옷가게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끔은 아빠와 TV에 나온 맛집에 찾아가고, 아웃렛에 가서 새로 나온 그릇을 구경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외출을 하기 어려워지자 없던 병도 생기게 생겼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트롯'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TV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입장을 넘어서서, 실시간 문자투표에 참여하고 유튜브에 댓글도 다는 등 대중문화와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노년층에게도 드디어 넓은 사이버 세상을 누비는 새로운 놀이 문화가 생긴 것이다.
빈 둥지를 채워주는 랜선 아들들
우리 엄마와 나는 친모녀 지간은 아니지만 (재혼가정이다.) 베스트 프렌드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 엄마와 7년 정도 같이 살았는데 우리는 모든 일상과 감정을 공유했다.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의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요즘 무슨 드라마가 재미있는지 함께 이불에서 뒹굴거리며 쫑알쫑알 이야기했다. 그러다 6년 전 외동딸인 내가 결혼을 하면서 엄마도 아빠도 적적해졌다.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빈 둥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고맙게도 임영웅과 미스터트롯의 동료들은 엄마의 빈 둥지를 채워주는 랜선 아들들이 되어 주었다. 가난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임영웅의 의지는 엄마를 감동시켰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바람에 일그러진 영웅의 얼굴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모습을 보며 안도를 느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미스터트롯 동료들과의 관계성을 보여줄 때면 영웅이에게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며 흐뭇해했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성장하는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고, 그룹 내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우리 세대의 팬덤 문화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문학적 음악의 힘
옛노래의 가사는 시와 같다. 임영웅이 부르는 전통가요를 가만히 들어보면 매우 문학적이다. 30대인 내가 들어도 감탄할 때가 있는데, 긴 인생을 살아온 엄마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영웅의 발성과 창법은 가슴을 울린다. 맛깔스럽게 꺾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뽕끼보다는 성악 발성에 가깝다. 엄마는 임영웅이 젊은 나이지만 태도와 음악이 점잖고 깊이가 있어 좋다고 한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훨씬 많은 나이. 고독과 불안이 밀려올 때, 임영웅의 음악은 위로가 된다. 살아있는 음악을 실시간으로 들려주고 있는 임영웅 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코로나가 끝나면 엄마와 임영웅 콘서트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티켓팅에 성공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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