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장인이던 엄마고양이/글쓰기

[책 리뷰] 박하재홍 <10대처럼 들어라>

by 일하는 엄마고양이 2020. 6. 17.

도서출판 슬로비, 2016.6.2 출판

 

 

10대 청소년들은 대중음악에 큰 관심을 두고 가수들의 사생활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평소엔 동아시아의 역사적·정치적 관계에 관심 없지만, 가수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들어 중국이 발칵 뒤집힌 사건을 접하면 이 복합한 사태의 원인을 무척 궁금해 한다. 청소년과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은 어른에겐 좋은 기회이다.

 

저자는 수업에서 청소년들을 처음 만나면 먼저 추천 음악을 받고 그 음악을 매개로 끌어올 만한 이야깃거리를 준비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추천 음악으로 선택하면, 작고 은밀한 아지트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공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초기 독일낭만파 음악가인 슈베르트가 당시의 자이언티라고 할 수 있다며 <겨울 나그네>를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가 책에서 초등학교 5~6학년 추천음악 리스트를 제시해 주었는데, 처음에는 아이돌 음악이나 힙합만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태지, 양희은, 이선희, 김광석, 성시경 등 기성세대의 음악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을 찾아 듣고 있고, 전국 어느 지역에 살든 편차는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대중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을 익히면 남과 자신의 우위를 습관적으로 비교하는 사고방식을 조금씩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각자 개성이 다른 만큼 능력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음악은 무엇인가? 저자는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세계 곳곳에 급속도로 퍼져나간 현대 음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 세계인들이 국경과 민족, 교육 수준을 넘어 친근함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을 위한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특히 힙합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힙합은 대중음악 장르 중 느즈막하게 태어났지만 지금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쇼미더머니>라는 랩 오디션 프로그램이 수년 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힙합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도 늘어났다. 사실 1972년 이후 태어난 사람이라면 대개 힙합과 친숙한 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에 랩을 받아들인 연령대가 20대 초반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전 세계적으로 힙합의 장점을 각종 수업에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교육자들 사이에서 늘고 있다.

 

힙합의 유래와 특징에 대해 살펴보면, 힙합은 1973년 미국 뉴욕의 게토 지역에서 탄생했다. 게토는 과거 독일에서 유대인을 격리한 구역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미국 대도시에 형성된 빈민가를 게토라고 불렀다. 흑인들이 모여 사는 게토에 브롱크스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에서 그 위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바람에 흉흉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기반 시설은 점점 낙후되어갔고 폭력적인 백인 갱들이 동네 흑인들과 다른 이주자들을 위협했다. 브롱크스의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리를 지어 다녔고, 가끔 폭력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춤과 음악을 즐기는 친목 동아리처럼 몰려다녔다.

 

1973년 8월, 브롱크스의 어느 허름한 아파트 건물에서 자메이카 출신의 신디라는 흑인 여학생이 파티를 주최했다. 유능한 디제이이자 동생인 쿨헉에게 노래를 틀게 했는데 이 파티가 성공하면서 이 남매는 이웃들에게 무료로 음악을 들려주기로 결심했다. 당시 음악을 들으려면 장비와 LP판을 사기 위해 적잖은 돈이 필요했는데, 신디와 쿨헉 남매가 야외에서 공짜로 음악을 틀어주자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와 춤을 추며 파티를 열었다.

 

남녀노소가 다 모이다보니 갱들끼리 싸움이 나기도 했는데,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 쿨헉이 음악을 틀어주지 않겠다고 하자, 싸움 대신 춤으로 승부를 내자고 합의를 보았고 이것이 바로 ‘비보잉 배틀’의 시초이다. 게토의 10대 청소년들은 마치 동물처럼 싸움의 위험이 도사리는 일상 속에서 그들의 현실에 알맞은 평화적인 방법을 찾아내었다. , 힙합은 문화적인 겨루기며 평화 의지가 담긴 예술적인 행위이다.

 

1990년대부터 힙합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생활에 점점 밀접해졌고 젊은 세대의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는 힙합 음악의 놀라운 융합력 덕분이다. 힙합은 세상의 모든 소리가 샘플링 대상이고, 랩으로는 무엇이든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 저자는 힙합 문화의 핵심을 세 가지로 보았는데, , 서로 존중하는 리스펙트의 정서, 둘째, 즉흥적인 겨루기로 실력을 키우고 우호를 다지는 배틀, 셋째, 둥글게 모여 누구나 공평하게 자신의 기술을 선보이는 사이퍼이다. 이러한 힙합 문화는 곁을 주지 않는 사춘기 세대가 평화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깨우치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인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청소년들에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너무 부러워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의 삶보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고 치유 받는 사람의 삶이 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10대와 어울리는 대중음악감상 수업의 가장 큰 목적을 ‘무엇을 하든 행복한 감상자가 되기’라고 정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로 하여금 경쟁과 순위를 찾으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해 대중음악도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수업에서 활용 가능한 음악과 영상 리스트가 가득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