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유현준 교수입니다. 공간마케팅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명견만리, 알쓸신잡2, 어쩌다 어른 등 각종 방송에도 출연하고 건축 관련 칼럼과 책을 쓰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이 책은 출간된 지 석 달 만에 18쇄를 찍을 정도로 베스트셀러로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최근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고, 흥미로운 부분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건축물을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됩니다. 같은 집이지만 그 집에 담기는 추억과 이야기가 달라지며 전혀 다른 집이 됩니다.
저자는 1장에서 우리나라의 학교 건축물에 대해 비판합니다. 학교 건축물을 양계장 혹은 교도소로 비유하며 이러한 건축 구조로 인해 아이들이 창의성을 잃고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학교를 저층으로 만들어 마당과의 접근성을 높여야 하고, 높고 다양한 천장 공간으로 디자인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학교 건물을 저층으로 만들기 어려울 경우에는 1층을 교무실이 아닌 교실로 만들거나 아이들이 옥상을 사용할 수 있게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운동장 담장을 허물고 가까이 가게를 두어 교사만이 아닌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안전한 운동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방과 후에는 주민들이 운동장을 광장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여 마을 주민 전체가 아이들을 키우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학교 건축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의 학교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도전 정신이 없고 전체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국민만 양산하게 될 것입니다.
3장에서는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에 대해 언급합니다. 후드티는 미국에서 흑인 힙합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후드를 둘러쓰는 행위는 시선을 차단해서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노력입니다. 건축적으로 보면 후드티를 입는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도시 빈민들입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선을 차단하고 자신의 영역을 만들려고 합니다. 주변이 안 보이니 머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려야 하는데 이런 행동이 힙합의 무브입니다. 손을 좌우로 넓게 흔드는 것도 힙합 춤의 형태인데 이는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액션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모자, 앞머리,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어폰을 끼거나 하는 행위도 흑인 힙합 문화와 비슷하게 자신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보입니다.
이 장에서는 1인 가구와 단기 임대 주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더불어 부동산에 불변의 법칙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학군이 좋은 곳이 집값이 비싸다는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국민들은 서른 살을 전후해 결혼을 했고 아이를 한두 명 낳고 아이 학교 근처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습니다. 특별히 주거 이동이 잦은 직업이 아니고서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중에는 이사를 자제하는 것이 통상적인 삶의 형태였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교우 관계와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그런 추세가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호황을 누리는 셰어하우스 사업을 보면 계약 기간이 자유입니다. 사무실도 달 혹은 주 단위로 계약하는 단기 임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테리어와 가구까지 다 완비되어 있는 곳에 옷이나 컴퓨터만 가지고 가면 되는 집과 사무실로 바뀌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기 보다는 빌리는 방식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한 곳에 오래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 9천여 년 전부터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꼭 다니기 시작한 것도 백 년 남짓한 삶의 형태입니다. 그 이전에는 수십만 년 동안 수렵 채집을 하면서 유목민으로 살았습니다. 어쩌면 최근 나타나고 있는 디지털 유목민 같은 삶이 인간에게 유전적으로는 더욱 맞는 삶의 형태인지도 모릅니다. 경험을 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시대에 어쩌면 한 집에서 몇 년씩 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삶의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10장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더 좋아지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제안합니다. 뉴욕의 경우 평균 1km, 14분 간격으로 브라이언트 파크, 하이라인 파크, 매디슨 스퀘어, 유니언 스퀘어 같은 공원들이 줄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의 공원은 블록의 안쪽에 위치해 있거나 경사지에 있는 경우가 많아 그 블록 내에 사는 주민들은 잘 이용할 수 있지만 대로 위를 이동하는 많은 시민들은 그 공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는 서울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공원과의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블랙 팬서>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겉으로는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도시의 소외된 계층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의 잠재적 위험이 만들어지는 방식 등 현재 미국 사회를 비판하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담긴 영화인 것입니다. 영화 주인공은 마지막에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한창 성장하고 발전할 때는 다리를 건설했습니다. 서울이 강남으로 확장되었고 한강에는 총 31개의 다리가 건설되었습니다. 다리는 이웃과 소통을 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리를 건설하기 보다는 벽을 더 세우고 있습니다. 재건축한 대형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거대한 담장이 둘러싸여 있고, 심지어 아파트 브랜드 이름에 캐슬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벽을 세우고 성을 만드는 것은 소통을 막는 것이고 이는 곧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서울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는 소통을 늘리고 지역의 개성을 찾아가면서 지역 편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 책입니다.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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