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끊임없이 평가를 하고 평가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평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평가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어느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를 넘어 이제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정도로 만연해 있다고 말합니다. 평가 결과를 통해 세상의 많은 것이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고, 심지어 평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평가로 이미 특정 행위가 제약되거나 유인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무수히 많은 평가 속에서 살아 왔지만 정작 평가 행위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평가 내용에만 집중해서 평가를 더 잘하려고 했거나 혹은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데 집중했을 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평가지배사회의 단면입니다. 평가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기보다는 평가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관조적 태도가 우선 필요합니다. 어차피 평가지배사회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 속에서 최대한 현명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평가’란 무엇일까요? 한자어로 ‘價(가)’는 어떤 대상의 값어치나 가치 등을 가리키고, 영어 ‘evaluation’의 어원도 ‘value’에서 나왔습니다. 즉 평가는 가치판단을 하는 활동입니다. ‘가치’는 무엇일까요? 가치는 쓸모나 유용성, 장점, 능력, 중요성 등을 일컫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평가는 어떤 대상에 대해 쓸모나 유용성, 장점과 같은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 혹은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나의 가치를 판단한다고 하니 온 신경이 평가로 몰리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좀 더 정교한 의미에서 볼 때 평가의 의미는 가치판단을 하는 활동과 더불어 그 결과를 인지할 수 있게 차별성을 부여하는 활동까지 포함합니다. 점수나 등급, 긍정이나 부정, 호감이나 비호감 등의 표현으로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게 차별성을 부여하는 행위까지 평가 활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평가는 가치판단을 해서 인지적 차별성을 부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평가는 왜 하는 것일까요? 우선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평가가 얼마나 권위를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사후적, 사전적 책임성이 확보됩니다. 둘째는 유익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평가를 함으로써 어떤 부분이 충분한지, 부족한지를 알게 되어 발전의 밑거름이 됩니다. 셋째는 의사소통을 위해서입니다. 공정한 평가 결과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근거나 증거로 기능해 대화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통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평가를 통해 조직 구성원들의 행위가 목표 달성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합니다. 이러한 4가지 이유로 인해 평가 행위가 정당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평가는 객관적으로 이루어질까요? 객관적인 평가는 공정한 평가로 이해될 만큼 평가에서 객관성은 규범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가를 위해 측정하고 결과를 산출할 때 오히려 주관성이 더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단지 객관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저자는 누군가가 평가의 객관성을 유독 강조하며 평가 결과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면 한번쯤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평가에서 주관성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할 것도 아니고, 배제시킨다고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특정 부분에서는 더 발휘될 필요가 있습니다. 평가를 기술적인 면과 판단적인 면으로 구분할 때 판단적인 면에서는 평가자의 진솔한 주관성이 더 강조됩니다. 그것이 더 적절한 평가이자 정확한 평가입니다. 저자는 진솔한 주관성을 위해 평가자에게 요구되는 자질로 관조하는 능력, 메타인지 능력, 공감 능력을 꼽습니다. 평가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어야 하고, 평가 대상을 제대로 인지하면서 평가하고 있는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평가 대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그로부터 생기는 공감은 평가자의 진솔한 주관성을 드러내는 원동력입니다. 평가 대상이 어떤지에 대한 공감 없이 평가하는 것은 피상적인 평가인 것입니다.
평가에 관련된 직・간접적인 것들을 모두 고려하면 도저히 평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집니다.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이와 관계되는 것들을 단순화시켜야 합니다. 평가를 할 때 우선 어떤 점에 초점을 두고 평가를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이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보통 평가 모델이나 전문가의 통찰력을 이용합니다.
저자는 평가 시 반드시 평가의 골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설명이 되는 구조, 즉 인과관계라고 말합니다. 인과관계에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타당성 있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평가가 만연한 사회가 되면 자격이 되지 않는 평가 결과들이 판을 치게 됩니다. 평가에 대해 무뎌진 사람들은 자격이 되지 않는 평가 결과를 그냥 수용해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평가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지 눈여겨봐야 합니다.
평가 과정에는 본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계속되는 경향과 패턴도 존재합니다. 중가 평가 본능은 평가 부담, 낮은 확신감, 합리적 무지 때문에 생깁니다. 그 결과 비슷비슷한 평가 결과들이 도출됩니다. 소극적 행동 본능은 평가 프레임에 충실히 따르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제시된 평가 지표에만 충실히 따르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평가는 이점도 있지만 권력관계로 인해 괴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보통 피평가자만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평가자나 평가대행자 또한 중압감과 양심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습니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상당한 괴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평가지배사회에서 이러한 괴로움은 평가피로가 되어 계속 쌓입니다. 저자는 만성피로는 문제가 되지만, 생산적 피로는 권장할 만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가피로를 완화하기 위해 평가 주기를 지나치게 짧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전 평가 결과를 후속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생업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평가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평가에 무뎌져 가도, 평가 행위를 무심한 일상으로 여기지 말고 평가의 속성과 특성들을 이해하면서 대응하고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평가자 혹은 평가대행자의 지원자로, 때로는 피평가자로 평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평가가 타당한지, 불필요한 피로를 유발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항상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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