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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던 엄마고양이/글쓰기

[책 리뷰] 이향규 <후아유>

by 일하는 엄마고양이 2020. 6. 17.

창비교육, 2018.2.26 출판

 

교육학 박사인 저자는 영국인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이주여성으로, 한국에서는 다문화가정으로 살아가며 겪었던 경험과, 국책 연구소와 대학에서 다문화북한이탈 청소년 교육 관련 연구를 한 경험을 넘나들며 그려냄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문제의식 없이 대상화하였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여성, 아내, 어머니, 이주민, 연구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마다 다른 부분에 공감할 수 있는 책이어서 소개합니다.

 

저자는 20009월에 영국인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한국에서 잠깐 살다가 영국에서 또 잠깐 살다가 한국에서 길게 살다가 얼마 전 다시 영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의 나라에서 다시 살게 되니 그가 한국에서 겪었을 어려움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를 대했던 방식으로 그가 자신을 대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20127,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함께하는 ‘2012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 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국책 연구소에서 일할 때 여러 번 만들었던 질문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저자는 그동안 이런 질문을 만들어 내서 북한 출신 학생과 다문화 학생들에게 수없이 들이밀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대상화된다는 불편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3년 뒤 이루어진 2015년도 조사에서는 다문화 가족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특히 배우자와의 관계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결혼 이민자와 귀화자는 66.6%가 만족했다고 했습니다. 전체 국민 가운데 배우자와의 관계에 만족하는 비율은 51.2%였습니다. 저자는 조사 결과로만 보면 다문화 가족이 전체 국민에 비해 가정생활에 더 만족하고 있는데 왜 이들을 3년마다 찾아내어 이런 조사를 하는 것인지 의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제 국제결혼도 그냥 결혼으로, ‘다문화 가족도 그냥 가족으로 봐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아이들이 어느 날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유라시안이라고 대답해 주려고 했습니다. 한 국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공동체와 문명에 속해있다고 생각하길 바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큰 딸은 엄마가 가르쳐 주기 전에 학교에서 먼저 다문화라고 배웠습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온 백인 배우자와 한국인이 결혼해서 만든 가정. 영어를 쓰고 부모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면 ‘글로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에 사는 한국 남자와 개발도상국에서 온 여성이 결혼해서 만든 가정. 피부색이 조금 검고 한국말이 서툴면 ‘다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문화라는 이름이 도움이 필요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편견과 차별을 겪는, 우리가 배려해야 할 사람을 의미하는 낙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문화라는 이름을 쓰면서 다양성의 문제를 민족 사이의 문제로만 한정 지어 버립니다.

 

저자는 2013년에 여성가족부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에서 하는 다문화 감수성 교육 프로그램 개발 연구를 맡게 되어 17명의 아이들과 12일로 이야기 캠프를 갔습니다. 차별 경험에 대해 질문하자, 거의 모든 아이들은 외국인 부모의 언어를 해 보라고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결과, 물리적인 폭력이나 적극적인 따돌림 보다는 불편한 시선으로 보거나 구별 짓는 것, 다문화라고 말로 낙인찍는 정도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행동의 근원이 적대 의식이나 혐오감이라기보다는 경험이 없어서 생긴 무지나 미숙함 때문이라는 것도 다행스러웠습니다. 훨씬 가르치기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12일 캠프 동안 차별 경험보다 더 알고 싶었던 것은 그들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였습니다. 그냥 참고 무시한다, 싸운다, 엄마나 선생님에게 말한다, 벽에 대고 소리지르거나 인형을 때린다, 교육청에 신고한다 등의 대답이 있었습니다. 둘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반에 짓궂은 남자아이 하나가 너는 돌연변이 합성인이야.”라고 놀렸습니다. 화가 난 둘째 딸은 , 내가 돌연변이면 너는 돼지의 돌연변이다. 그것도 제주산 흑돼지!”라고 말했습니다. 상대가 말로 공격한 것을 말로 갚았고, 상대가 외모로 공격한 것과 똑같이 상대방 외모를 놀리는 것으로 그게 적절치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다문화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는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기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라고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누구도 가해자이기만 하거나 피해자이기만 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성찰하는 법과 함께 피해자가 되었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법 두 가지 모두 배워야 합니다.

 

저자는 북한 출신 청소년 지원 문제에 대해 국회 정책 토론회에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정부 예산을 받으려면 이 지원이 왜 사회적으로 필요한지 설득해야 합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 2,500만 명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탈북자 2만 명하고도 함께 살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냐고, 이들을 더 많이 지원해서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잠재적 위험 집단이 될 수도 있고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원을 받기 위해 공포를 세일즈한 것 같다고 합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다문화 청소년을 지원할 때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집단이 아니라 지금 도움이 필요한 개인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불쌍하고 차별받고 잠재적으로 위험하기도 한, 그러면서 동시에 통일의 역군이나 글로벌 인재이기도 한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한 개인으로 봐 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대상화하여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정책과 지원의 편의상 다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들을 집단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개인으로 바라보는 것을 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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